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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과 ‘블랙컨슈머’

백병성 소장(소비자리더아카데미)

최근 갑질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여론에 등장하고 있다. 거래관계나 사회적 지위에서 우위에 있는‘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을’에게 부당 행위를 하는 경우 이를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얼마 전 땅콩회항사건, 모 대학 어느 교수가 교수직위를 이용해 제자와 인턴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 등 이른바 갑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등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고객인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모 백화점 모녀사건, 대형매장 주차장에서 소비자의 과도한 행동이 언론에서 이슈가 된 적도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소비자가 문제행동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거래과정에서 판매자가 잘못한 경우, 소비자의 기대치가 높은 경우,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저급한 경우, 피해를 입었으나 제도적인 장치가 불완전하여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경우, 소비자의 개인적인 성향과 사회적으로 소비자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분위기 등이 어우러져 소비자가 시장이나 거래과정에서 갑질의 행동이라 할 수 있는 소비자의 문제행동을 보인다.

소비자의 갑질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폭언이나 업무방해, 인터넷 등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피해로 발생한 억울함을 해소하거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때 판매자나 사업자는 주위가 소란스럽고 좋지 않은 입소문이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얼마간의 합의(금) 또는 추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요구내용을 들어주는 예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업무보고에서 “블랙컨슈머*를 근절하여 책임 있는 소비문화를 확산한다”고 한다. 그러면서‘예약부도(No-show), 악의적·상습적 민원 제기 등을 무책임한 소비 행태’를 블랙컨슈머의 예로 들고 있다. 공정위가 말하는 ‘블랙컨슈머’란 예약한 후 제때 취소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또 악의적이거나 상습적인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의미하고 이들의 행동은 무책임한 것이기 때문에‘책임 있는 소비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누구의 기준으로 블랙컨슈머를 규정하느냐이다. 예약부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는 거래과정에서 적절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나중에 입은 피해에 대해 조금 강하게 항의 한 경우,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법과 규정에 의해 보상이 어려워 이를 탓하며 여기 저기 민원을 제기한 경우에도 이에 든다고 할 수 있을까?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구입하여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중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서 정한 기준 일을 몇 일이라도 넘겨서 고장이 나면 소비자의 부담으로 수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드물게는 피해보상 요구과정에서 폭언이나 업무방해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자제되고 보다 정중한 태도를 갖추어야 힐 것이다. 소비자문제(피해)를 다루다 보면, 소비자의 행동이 과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소비자는 억울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히려 사업자(판매자)의 과장, 기만에 의한 거래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해보상을 강하게 요구하는 소비자, 반복해서 민원을 내는 소비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업자나 판매하는 쪽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면 요즘 흔히 말하는 창조, 혁신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한다. 소비자의 문제행동도 소비자만의 억지주장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큰 경우가 상당하고, 그들의 주장 속에서 개선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The Black Consumers’라는 표현은 ‘흑인 소비자’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영미권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의미를 굳이 영어식으로 표현한다면 ‘Bad Consumers’적절할 것이고, 영미원에서는 ‘Consumers Traud’라고 지칭한다(이승훈, 블랙컨슈머, 북스페이스, 2011, 57쪽.)